[서평] 행복한 발전을 꿈꾼다. <오래된 미래>
약간 큰 도시인 광역시에서 나고 자랐다. 진짜 대도시 서울, 신도시 세종, 호주 시드니, 그리고 크지 않은 중소도시 등 다양한 사이즈의 지역에서 하고 있는 직장생활. 그리고 부모님 은퇴후 10년간 했던 찐 시골생활 간접체험..
다양한 크기의 도시에서 살아보니 도시는 이렇고 시골을 저렇다라고 규정짓는 것은 솔직히 어렵다.
대도시 서울 생활이 삭막하다고들 하지만, 살아보니 친구가 없는 중소도시의 생활이 더 삭막하고 어렵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그런 면에서 <오래된 미래> 이 책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위치한 ‘라다크’에서 체험한 공동체 문화는 흔히 우리가 부러워하는 '시골인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선진국(스웨덴) 출신인 저자는 라다크에서 그들의 공동체 문화의 장점과 내재된 힘을 느낀다. 그리고 1975년 외국 관광객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불어 닥친 개발의 광풍에 변한 라다크를 통해 세계화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저자를 중심으로 진행된 ‘라다크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화의 대안도 모색해 본다. 이것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라다크의 가족적· 공동체적 문화의 우수성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라다크의 개발 역시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언어가 다르고 등장인물이 다를 뿐이다. 때문에 라다크의 전통문화를 다룬 책의 앞부분은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개발과정을 다룬 중간 부분에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라다크 프로젝트 경험을 얘기한 부분은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로하스와 유사한 개념이어서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개발, 기술의 진보는 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할까? 왜 가난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전통적인 자급경제를 버리고 현대화 과정을 통해 주류경제에 편입되고 현금 수입을 추구하는 방식으로의 변화는 지역적 다양성과 독립성을 버리고 전 세계를 단일문화와 단일 경제체제로의 대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기 텃밭에 심은 감자를 캐먹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다른 나라에서 키워서 가루로 만들고 재가공한 포테이토 과자를 사서 먹는 것인 경제를 위해 ‘옳은’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낳는다.
이는 비단 경제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여성의 지위변화,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 문화와 의식의 변화를 초래한다.
이것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누구를 행복하게 하는가? 텃밭 주인인 ‘나’는 아니다. 속칭 ‘룰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나 좋은 일인 것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반개발을 이야기한다.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반개발은 anti가 아니라 counter이다.)
적정기술, 탈중심화된 개발방식을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공동체를 되살릴 것을 요구한다.
나는 적정기술이 맘에 와 닿았다.
적정기술이란 주로 개발도상국에 적용되는 기술로, 첨단기술과 하위기술의 중간 정도 기술이라 해서 중간기술, 대안기술, 국경없는 과학기술 등으로 일컬어진다.
적정기술의 연원을 마하트마 간디의 물레로까지 끌고 올라가는 이도 있다. 당시 인도의 목화를 수입해 옷으로 가공한 뒤 인도인에게 비싸게 되팔던 영국에 맞서는 데 물레로 옷 짓는 기술은 말 그대로 ‘적합한 기술’이었다. “부유한 10%를 위해 공학설계자의 90%가 일을 하고 있다”며 “세계의 수십억 고객들이 2달러짜리 안경과 10달러짜리 태양전지 손전등, 100달러짜리 집을 바라고 있다”고 강조한 정신과 의사 출신인 폴 폴락은 적정기술의 주창자로 꼽힌다.
파괴적인 개발을 통한 대규모 중앙집중식 산업모델을 기반으로 한 ‘고도기술’을 개도국에게 복음으로 전파할 것이 아니라,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지 않고 그 지역조건에 어울리는 소규모 설비를 근간으로 개발에 접근하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 제목은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세계화라는 거대 담론에 대한 책이지만 미시적인 일상생활에서도 가슴깊이 새겨야겠다. 우리의 격언 온고지신(溫故知新) 역시 ‘오래된 미래’를 가르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