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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시 면류관을 쓴 한국 <뜻으로 본 한국 역사>

함께 나누는 우리들의 취향 2023. 5. 14. 09:01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함석헌(1901-1989)이란 이름을 접한 것은 대학원 입학해서였다. 노교수님께서 자주 언급하셨는데, 그때도 그냥 존경받는 언론인인줄만 알았다.

 

좀 시간이 흐르고 그가 존경받는 인권운동가, 종교사상가이며, 심지어 ‘한국의 간디’라고 불리운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왜 우리는 중·고등학교때 이런 것을 배우지 않았던 걸까? 마치 대학 입학하고서야 광주민주화운동, 516쿠데타 등 근현대 역사에 대해 알고 멍했던 그런 느낌이었다. 

함석헌 선생의 역사평론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1934년부터 ‘성서조선’이라는 잡지에 기고하신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모아서 낸 책이다. 초판은 1950년에 나왔고,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제목으로 수정되어 넷째 판이 나왔는데, 그것이 지금의 책이다.


1부에서는 함석헌 선생의 사관과 이에 의한 한국역사의 성격을 규정한다. 

 

선생님께서는 역사를 규정하는 기준으로 지리, 민족의 특질, 역사를 짓게 한 하나님의 뜻. 이렇게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중국, 만주, 일본에 둘러싸인 반도국가라는 지리적 특성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가능성을 갖게 하는데, 호령하는 사령탑 혹은 압박의 틈바구니이다. 같은 반도국가인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전자의 성격을 갖고 있으나 유감스럽게 우리는 후자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민족성은 어떠한가! 남들은 옛 조상에 대해 착하고 날쌔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국민적 이상이 없어진 것도 우려할만한 현실이란다. 신화, 민족적 영웅이 없고, 고유한 철학과 종교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좋은데 자기를 깊이 들여다보고 팔 줄 모른다. 자기를 파지 않기에 자존심도 없는 것이 우리 민족이란다. 자존하지 못하기에 자유가 없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함석헌 선생은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규정한다.


2부~3부까지 단군부터 해방까지의 우리나라 역사와 그것이 한국역사에 미친 의미를 살펴본다.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그의 의미를 말씀하셨는데, 이를 한 문단으로 정리하신 부분이 있어 옮겨 적는다.
  
“우리는 단군시대의 높고 거룩한 나라 배판을 보고 존경하고 사모하는 생각이 났고, 열국시대에 여러 나라들이 씩씩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 축하하였다. 세 나라가 서로 으뜸이 되겠다고 피땀을 흘리는 단련의 시대를 보고 두 주먹을 부르쥐고 치를 떨었다가 신라가 형편없이 통일을 해버리는 것을 보고는 이를 갈았고, 맥빠지고 겁난 고려가 거듭 거듭 때를 놓치는 것을 보고는 쥐었던 주먹으로 땅을 쳤다. 그러나 이제(조선)는 발을 구르고 몸부림을 치며 통곡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온다. 그것이 수난의 시대다.”(243p) 

 고난의 역사를 가진 험난한 민족이라니 썩 즐겁지만은 않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가 ‘수난의 비렁뱅이’라고 하신다. 

그렇지만 고난에도 뜻이 있으니 절망하지 말자고 한다. 이것이 4부의 내용이다. 

 

고난은 죄를 씻고, 인생을 깊게 하며, 위대한 인생을 만든다고 한다.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견디고 극복하면 참자유, 진정한 행복과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하신다. 어떤 의미인지 내게 선명하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그냥 이를 극복하면 우리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힘을 북돋아 주시는구나 싶다. 

큰 스승이라는 함석헌 선생의 통찰력에 대해 놀란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이후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탁월한 해석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나로서는 그의 간결한 문장력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제목은 간단한 문장으로 복잡한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일례로 조선의 태평성대였던 세종시대를 그는 ‘쓸데없어진 세종의 다스림’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그 파트를 읽고 나니 그가 단 그 제목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아..! 책을 다 읽고나니 서글퍼진다. 

 

애국자는 아니지만 앞으로 민족의 자긍심이란 말이 불편하게 들릴 것 같다. 무엇보다 정신의 뿌리가 없다고 하신 함석헌 선생의 지적이 마음에 와닿는다. 조상이 아니라 내 얘기인것 같아서다. 생각하는 백성으로 다시 설 것. 이번 일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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