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이렇다 하면 그런줄 알고, 저렇다 하면 저런 줄 아는 것.
딱 나의 경제상식 수준이다. 이런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딱 나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책. 요즘 장하준의 새로운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읽으며 다시 '나쁜 사마리아인'을 뒤적여보았다.
나에게 큰 충격을 준 책.
이제까지 내가 알았던 것들. 단체로 나를 속였다는 것을 알았다. TV드라마의 세트에서 PD 등 제작진의 시나리오대로 한 평생을 사는 영화 <트루먼쇼>의 짐 캐리의 처지와 다름없다. 트루먼 쇼는 단지 한 사람을 속이는 수준이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평범한 전 세계 인류를 상대로 한다.
보호무역과 자유무역, 세계화, 외국인투자, 관세, 특허와 저작권, 공기업 문제, 그리고 민주주의와 문화까지 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에 대해 기존에 내가 알고 있었던 시각을 뒤집어준다.
단 한권의 책으로 인해 30여년 배운 것이 꼭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탄탄한 분석 덕이다.
중국, 일본, 미국과 주요 유럽 국가는 물론 콩고, 모잠비크 같이 어디 있는지도 좀 헷갈리는 개도국들의 현재와 과거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에 바탕을 둔 설득력 있는 분석은 ‘장하준’이란 학자를 믿을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비결에 대한 장하준의 분석으로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속도는 영국은 2세기, 미국은 1.5세기가 걸린 일이라고 한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은 다양한 보호무역 장치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방식은 지금의 선진국에서 모두 이용한 것들이었다.
이제 선진국으로 전 세계 경제이슈를 점유한 이들은 보호주의에는 병폐가 있다고 주장한다.
보호주의로 성장한 이들이 보호주의가 필요한 현재의 개도국에게는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바로 ‘사다리 걷어차기‘ 우리가 IMF에서 강요받았고, 경제재도약의 선결과제로 믿었던 외국인 투자 확대, 공기업의 민영화, FTA 같은 이슈들 역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요구하는 것들에 불과하였다.
여기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누구인가?
성경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있다. ‘착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을 보니, 일반적인 사마리아인들은 착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사마리아인들에게 '나쁜'이라는 수식어를 더 붙인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이란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한 대로’ 할 것을 강요하면서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자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제시하는 경제 성장의 해답들. 이것은 그들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결국 내 곳간을 고스란히 바치는 것과 다를 것 없다. 전 세계를 상대로 그들의 경제철학을 강요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 우리나라가 그 이면을 생각하지 못하고 앞장서 따르는 것 같아 답답하다.
한편, 나 개인은 어떠한가도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안에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위치에 있을 것이다. 우리들을 부동산으로, 펀드로 이리 저리 몰려다니게 만드는 그들에게 농락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려면, 내가 하는 일뿐만 아니라 내가 버는 돈에 대해서도 나름의 경제철학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장기적인 경제관점을 세우고 휘둘리지 않고 우직하게 투자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나름대로의 경제관점을 세우는 것도 참으로 어렵지만, 한 푼, 두 푼 차이가 바로 눈앞에서 확인이 되니, 실천하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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